메이드의 업무(Maid’s du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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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의 업무(Maid's duties)
참으로 고증이 잘된 애니메이션

보통 우리들이 알고 있는 메이드는 차를 타거나 또는 목욕을 돕거나 요리나 침실 등 여러가지 잡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메이드는 생각보다 굉장이 바빳다고 합니다. 마치 군대처럼 분 단위로 생활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죠 메이드의 종류 및 역사 관련해서는 해당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당시 저 시간표를 보고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지? 하고 의문이 생기는데 실제 해보면 숙달되어서 오히려 여유가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정표를 만들어 스태프에게 나누어주는 관습은 흔했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업무에 따라 조금씩 달랐겠지만 어느 저택은 하우스 메이드는 청소와 난로, 등불 관리를 담당하는 등 그 집에 맞게 일정이 있었습니다.

마치 부대마다 세부적인 사항은 다른 것 처럼말입니다. 어째든 이러한 일정에도 메이드들은 숙달되고 나서는 남는 시간을 틈틈이 활용하여 다른 팀을 도와주거나 각종 잡무를 하는 등 여러가지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계열에 따라서도 달랐습니다. 수도에 있는 저택의 경우 봄과 여름은 사교 기간이기에 무도회같은 파티가 많았고, 가을과 겨울은 사냥의 계절이여서 항상 고용인의 사냥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경험하는 군대의 봄맞이 대청소처럼 그 당시 메이드들에게도 가장 큰 행사였다고 합니다. 이때 주인이 여행갈 때 약 2~4주간 철저하게 청소했다고 합니다. 벽을 새롭게 페인트하거나 커튼을 빨고 가구를 닦든 여러가지 활동을 했는데 따로 웃긴건 휴가나 보너스는 나오지 않았다고 회고록에 나옵니다.

이제부터는 가장 고된걸로 유명한 메이드 직렬에 따라 하는 업무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잡무를 하는 메이드 오브 올 워크

보통 모든 잡일을 하는 직렬은 주로 중산층 집안에서 고용했습니다. 왜냐하면 1~2명밖에 고용할 돈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러기에 이러한 메이드는 한나의 회고록처럼 계단 위와 아래의 삶처럼 차이가 큰 케이스의 메이드였습니다.

중류계급 이상인 신사의 집에서 상인이나 직인의 집 학교, 숙소 등 고용되어 쉴 새 없이 중노동을 해야했습니다. 당시 저 회고록에서는 “키친에 불을 피웠다. 난로 청소, 방을 쓸고 먼지를 털었다. 부츠를 닦았다. 계단 위로 아침 식사를 들고 올라갔다. 침대정리를 하고, 아침 식사 정리와 설거지, 나이프 닦기, 점심식사 준비하고 식탁보를 깔았다. 식기를 정돈 후 빵을 구운 후, 잠깐 일식을 보았다. 주인님의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내 몸을 단정히 하고 차를 마셨다. 전언을 전하고 식기를 정리했다. 동료인 앤이 남동생과 함께 소총을 든 군인들을 구경하러 갔기에 대신 아이들을 정원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을 재우고 오수를 버렸다. 계단 위로 식사를 가지고 갔다. 식기를 정리하고 11시에 취침했다.”

기상은 군대처럼 06시 또는 06:30에 ~ 취침은 22~23시에 매일 16시간이 넘는 장기간의 노동을 했으며, 파티, 요양, 동료의 업무 지원 등 본래 업무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보통 이러한 메이드를 들어가는 경우는 좋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연줄이나 돈이 없으면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추천서를 받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메이드의 2/3이 이쪽 계통이였다고 합니다. 사실상 중산층의 메이드는 현대의 스타트업과 동일한 수준이였습니다.

 

주방의 청소부 스컬러리 메이드

키친 메이드가 요리사 보조라면 스컬러리 메이드는 주방일의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잡부입니다. 스컬러리에 틀어박혀서 흰 모래나 세탁소다 또는 비누를 사용하여 온갖 냄비나 식기, 조리기구를 하루 종일 닦아야 했습니다. 거기에 집 안에 있는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보일러의 불도 관리했습니다.

흔히 고깃집에서 불판이나 설거지만 하는 알바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겁니다. 거기에 좀 더 힘든 업무가 추가 되었다는 정도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끝임 없는 설거지로 주부습진이 생겼기에 매우 손이 아팠다고 합니다. 당시 메이드들 사이에서는 여기로 배정된 경우 ‘모든 사용인의 찌꺼기, 사용인의 사용인이며 영원한 희생양일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확실히 스컬러리 메이드는 가장 지위가 낮고 급료도 적고, 나이도 어렸기에 대우가 최악이였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요리사 보조 업무 담당 키친 메이드

스컬러리 메이드보단 낫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재료를 손질하는 업무였기에 굉장히 고역인 업무 중 하나 였습니다. 당시 소녀들이 동물의 시체를 손질하는건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오죽하면 짐을 챙겨서 야반도주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몰론 키친 메이드가 힘들고 역한 업무만 있는건 아니였습니다. 아무래도 요리를 하는 업무였기에 냄비에 남은 맛있는 요리를 을 본다는 명목으로 먹을 수 있었고, 아이스크림 제조기같은 핸들을 돌리는건 스컬러리나 키친의 역할이였기에 필요 이상을 만들어 귀한 생과일과 함께 먹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핸들 돌리는건 정말 힘들었다고 전해집니다.

19세기 아이스크림 프리저
19세기 아이스크림 프리저
19세기 아이스크림 프리저 작동방식
19세기 아이스크림 프리저 작동방식

집의 요정이자 장식이였던 메이드

당시 19세기 중류계급에서는 메이드를 장식품처럼 여겼습니다. 사실상 처음에 작성한 메이드 글처럼 중·상류층은 귀족을 따라하고 싶었기에 집에 1~2명씩 메이드를 고용하여 데리고 다니는게 유행인 정도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겨울에 현관 계단을 숫돌로 밀면서 청소하는데 메이드복 외에는 착용을 금지시키는 등 근처 사용인들과 비교하여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합니다.

팔러 메이드의 경우 고용했다는걸 자랑하기 위해서 방문객들에게 응접실로 데려가 집사나 풋맨이 하는 일을 대신 시켰습니다.(귀족들 따라하기) 어이없는 부분은 하우스 메이드 겸 팔러 메이드를 양쪽 다 하고 있었기에 더욱 일이 힘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1901에 출판된 가사 사용인 메뉴얼에는 ‘하우스 메이드라면 조용히 일하고, 가능한 모습을 드러내지 말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메이드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안된다는 이상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산층은 더러운 노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요정처럼 시야에 안보이게 몰래 몰래 일해야 했다고 메이드 회고록들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집이 그런건 아니였지만 흔히 군대의 부대(지휘관) by 부대(지휘관)라는 말처럼 업무와 안주인의 관계 등이 다 달랐다.

 

다음편에서는 메이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전편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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