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가 되는 방법(How to start a m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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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가 되는 방법(How to start a maid)
1930년쯤 주인이 메이드를 호출벨 대신 전화로 호출했다고 합니다.

전편 메이드의 거주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하우스키핑같은 메이드는 어떻게 취직하는지 알아보는 글이 되겠습니다. 메이드는 빠르면 13~14살에 취직합니다. 첫 직장은 2류 직장이라고 불렀는데 이유는 대부분 급여나 환경 대우 등이 나쁘며 추천장을 받고 이직하는 개념의 단어로 불렸습니다.

대부분 아는 목사 등 지인을 통해서 가까운 상가나 농가로 통근하거나 멀리 떠나는데, 신규이기에 처음부터 일을 배워가야해서 상당히 열약했습니다. 그렇게 1년 이상 버텨서 저축과 경험을 쌓고 소개장을 받아 옷을 구매하여 정식으로 취직하러 이동합니다.

정식 취직 방법

취직자리를 찾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알고 있는 지인을 통해서 추천 받아서 취직을 하는 방법과 잡화점이나 소매점 등에서 구인 구직 정보가 모이는 곳에서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신문을 통해서 취직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영국 런던의 The Times 신문(1865년 5월 23일 화요일)에 중앙 런던 전역의 하녀에 대한 구인 광고
영국 런던의 The Times 신문(1865년 5월 23일 화요일)에 중앙 런던 전역의 하녀에 대한 구인 광고

주변에 지인 메이드들이 추천하는 경우가 아닌 직접 취직하러 갈 때에는 주변에서 발품을 팔아 평판을 조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기업에 취직할 때 수시로 사람이 짧은 기간에 많이 바뀌는 자리는 기피하는 것처럼 당시에도 소문을 듣고 지뢰를 많이 피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지역 연줄을 원하는 부모들은, 그 지역의 목사 일가에게 추천 받거나 의지했습니다. 지방의 경우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목사관의 비트윈 메이드(하우스랑 키친 메이드 겸직하는 메이드) 자리를 소녀들이 서로 가질려고 경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목사가 마땅히 알맞는 일자리가 없다면 이웃 저택에 메이드를 구하고 있으면 소개시켜주거나 또는 구직자들을 모아 신문에 광고를 냈다고 합니다.

몰론 위 사진처럼 신문에는 자리가 한정되었기에 단편적인 정보만 작성됩니다. 그러기에 실제 메이드를 찾는다고해서 갔더니 술집이거나 유흥가든지 여러가지 지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우스 겸 키친 메이드를 구합니다. 화목하고 대우 좋습니다.”하고 갔더니 선술집였다는 일화가 당시 자서전을 보면 종종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아무래도 검증이 없기에 그런 사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경력직의 경우는 사용인 등록소인 매시, 헌트, 메이페어 에이전시 등에서 많이 이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직접 발품을 파는 채용시장 이라는 행사도 열리는데, 보통은 농업종사자가 고용하는 행사였지만 낙농업 일을 하는 데어리 메이드들이 수요가 있기에 만히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 요리사를 뜻하는 달걀을, 하우스 메이드를 뜻하는 빗자루를 들고 스스로 발품을 팔면서 고용주를 찾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행사중에 술을 마시고 진상을 피우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다보니 점점 노동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 축제가 사라졌습니다.

 

집사 학교처럼 메이드 학교도 있었다!

의외로 메이드 즉 가정사 사용인 훈련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입학 조건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을 대상으로 지금의 실업계 고등학교처럼 실전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배우는 학교였다고 합니다.

지금의 학교처럼 체계적으로 구성된 학교부터, 작은 집을 교사로 삼은 곳, 후원으로 운영하는 곳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4살에 입학한 아이들은 기숙 생활을 하면서 8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배웠다고 합니다. 수업은 아침 06:30~07:00사이에 시작하는 경우가 보통이였고 요리, 세탁, 의복 등 배우고 각종 비용이 무료였지만 정원이 적었기에 경쟁이 심했다고 합니다.

학교에 따라서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 곳도 있었는데, 보통 이런곳은 귀족 저택가로 구직하는 흔히 메이드의 엘리트 라인이였습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특목고나 외고를 생각하시면 편하겠습니다.

 

그 외에 고아원이나 구빈원에도 직업훈련 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실 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게 아니다보니 취직하려는 예비 메이드들에게는 고생길이 뻔했습니다. 또한 이런 가난한 아이들은 잘 못먹어서 영양소가 부족했기에 몸집이 작고 외모도 별로였기에 평균적으로 적게 급료를 받고 취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 운 좋게 다른 방법이나 추천으로 뽑혀도 최종적으로 가정부나 여주인이 면접을 보고 뽑았다고 합니다.

 

당시 19세기 의무교육제도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지만 같은 나이의 학생이여도 집안에 따라 교육이 달랐습니다. 즉 중·상류층 가정의 여자아이와 노동자계급(빈곤층)의 여자아이가 배우는 과목이 달랐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경우에는 여성 가정교사가 집안에 상주하면서 읽기, 쓰기, 계산 등 잡다한 지식을, 교양 부분에서는 프랑스어, 음악 댄스 등을 가르쳤습니다. 즉 숙녀로서의 교양을 중시했기에 이런 부분을 중심으로 배웠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은 일요학교나 지역의 사영학교, 자선학교에 다니면서 기초적인 읽기,쓰기,계산,뜨개질,재봉등을 배웠습니다. 수업료나 파트 업무 때문에 매일 다니는게 어렵고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었기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1870년에 교육법이 만들어지고 1880년에는 5~10살까지, 1893년부터 1918년까지 단계적으로 11,12,14세까지 의무교육 기간으로 지정되어 공립초등학교가 설립되고 여기서 요리나 세탁 등 실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런 교육의 부작용으로 잡지사에서는 “빗자루 사용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악기는 잘 연주하며 소수점 계산도 가능하다며 메이드가 자랑스럽게 말한다”라며, 그래서 검증된 중년의 메이드를 고용을 결정했다. 라는 내용을 투고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때나 지금이나 세대 갈등은 있었나봅니다… 지금의 MZ라면서 이직이 많다, 못참는다 영하다 등으로 말하는데, 저 당시에도 강압적인 규율에 대해 반항하는 불량소녀들이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는걸 보니 각종 부조리가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참고자료에 책이 당시 메이드들의 삶을 대변해줍니다.

보통 계단 위를 고용인, 계단 아래 즉 지하를 사용인들이 살아가는 곳인데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고 합니다. 흔히 젠틀맨이라는 존재들이 성범죄 및 폭행도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메이드들도 중상류층 = 중소기업, 귀족 저택 = 대기업으로 나눠질 정도로 대우나 급여 환경의 차이가 컸다고 합니다.

 

참고자료

The Maid’s Tale: 계단 아래 삶에 대한 폭로하는 회고록

the diaries of hannah cullwick victorian maidservant

채용시장에 대한 참고 사이트

 

위 책들은 국제도서관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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