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렵 메이드들은 어디서 살았을까?(maid res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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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렵 메이드들은 어디서 살았을까?(maid residence)
컨트리 하우스

전편 메이드의 종류 및 역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흔히 소설이나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메이드들은 과연 실제로 어떻게 살았을까요?

막 귀족 도련님을 모시면서 정말 제 2의 여주인공 후보처럼 살았을까요? 한번 알아볼까요?

 

메이드들은 보통 접점이 없었던 부유층의 집으로 파견되어 가사 사용인 생활을 시작하는데, 처음에 거대한 저택과 집안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안에서 생활하면서 적응하며 자기집처럼 많이들 여겼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귀족의 저택 컨트리 하우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컨트리 하우스

컨트리 하우스는 보통 손님과 귀족 가족들이 사용하는 앞쪽에 해당되는 만찬실, 응접실, 무도회실, 도서실, 서재, 침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는 1~2층까지 각 방의 접근성이 좋으며 채광과 정원이 잘보이는 부분이다. 흔히 우리들이 좋은 터를 가진 집을 말하는 배산임수로 부르는 부분이였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뒷 쪽 부분은 사용인들의 영역이였습니다. 규모가 큰 곳에서는 앞쪽에 저택관리인이나 집사가 담당하고, 뒤쪽은 가정부나 여성 요리사가 담당하는 경우가 보통이였습니다.

이러한 경계를 나누는 개념이 현대날의 그린벨트처럼 그린 베이즈 도어였습니다. 여기서 베이즈는 녹색의 모직천을 사용하는데, 사용인들의 공인에서 발생하는 생활 소음을 줄이기 위해 깔아뒀다고 합니다.

이걸 깔았다고 합니다.(흔히 당구장 바닥에 깔는거)
이걸 깔았다고 합니다.(흔히 당구장 바닥에 깔는거)

이걸 기준으로 앞 뒤쪽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이게 깔리지 않은 밖으로 나가면 풍경이 확 변하면서 화려한 내부 모습이 반겨줘서 신입 메이드들은 이때 많이 정신을 빠진다고 합니다. 또한 사용인과 귀족 가족들의 출입구는 대개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컨트리 하우스의 구조 번역본입니다.

컨트리 하우스 도면 번역본
컨트리 하우스 도면 번역본(자체 번역이여서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본

지금부터 사용인 구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도면과 같이 참고해서 보시면 편하겠습니다.

사용인 담당 구역

사용인 지역을 집 안에 둘지, 별채에 두어 서비스용 통로로 연결할지, 지상에 둘 것인지 아님 지하에 둘것인지 등 저택의 규모나 시대의 유행, 집주인의 마음에 따라서 구조에 개성이 다릅니다. 메이드를 보고 싶지 않은 집주인이라면 대게 지하나 뒤쪽 통로에 구역을 나눕니다. 작업 공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된다고 판단하면 작업장은 커지고 용도별로 작은 방이 늘어납니다. 위 도면처럼 잘게잘게 짤라집니다.

당시 각 방은 하인방과 와이어로 종이 이어져 있었다.
당시 각 방은 하인방과 와이어로 종이 이어져 있었다.

위 사진처럼 해당 하인이 필요할때면 주인은 하인 호출벨을 땡겨서 호출했습니다. (로판에서 종을 흔들어서 문앞에 대기중인 메이드가 들어오는 구조는 아니였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각 구역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정부 구역

메이드들의 관리자인 가정부는 청소를 담당하는 하우스 메이드들을 관리합니다. 전용 공간이 주어지는데, 사무적인 업무나 각 구역의 수석들을 모아 식사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가정부가 관리하는 생필품이나 식기, 리넨창고가 달린 스틸룸이라는 소형 키친이 설치된 집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가족에게 제공하는 과자나 음료를 스틸룸 메이드를 감독하며 가정부가 준비했습니다.(위 도면에는 없습니다.)

낙농실에서는 유제품을 직접 만다는 데어리 메이드, 세탁실에서는 린드리 메이드가 일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귀족 저택은 메이드 오브 올 워크스가 다 담당했습니다)

요리 구역

당시 유럽에도 돈 많은 귀족은 프랑스 남자 요리사를 사용했지만 너무 비싸기에 보통은 영국인 여성 요리가사 키친 메이드에 스컬러리 메이드를 데리고 요리했습니다.

해당 요리부서는 각종 창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음식은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라서 하우스 메이드의 작업실이 없는 경우는 있어도 키친이 없는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충분한 공간과 환기를 위해 2층 높이 만큼 천장을 높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냄새와 습기를 피하기 위해서 식당이나 응접실에서 먼 곳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음식냄새…!) 멀어진 만큼 요리를 보온하는 것은 메이드들의 몫이였기에 고난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바로 아래이면 음식용 엘레베이터나 전용 계단으로 단축이 가능했겠지만… 그게 아니면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집사의 구역

규모가 큰 집에서는 저택관리인, 집사가 있으며 저택관리인은 경리와 인사, 집사는 주류 관리가 역할입니다. 시대에 따라 후자가 전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급여 문제라고 추정됩니다)

집사는 주인이나 손님을 직접 응대하며 만찬회 등 파티를 총 지휘합니다. 전용 집사실이나 작업실을 가지고 있어도 풋맨을 감독하면서 은식기나 글래스를 닦았다고 전해집니다.

와인이나 맥주를 보존하는 셀러는(도면에서는 저장소) 온도나 습도가 유지되는 북쪽 지하에 두어 집사가 접근하기 쉽게 했습니다.

옥외 지역(저택 외부)

정원사나 사냥터지기는 기술과 경험이 있어야 하는 업무이기에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며, 부지 안에 처자식과 함께 살아가는 오두막을 받습니다.(거의 전문직)

정원사와 부하는 공동 숙소에서 함께 살면서 작업하고, 가족들이 사냥하러 먼 곳으로 이동할 때는 말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마구간 일도 중요한 업무에 속했습니다.

1층에는 말과 마차를 수납되며 관리에 필요한 작업장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고용인 가족 구역

고용주 가족의 아이들은 침실과 낮에 아이들의 놀이방, 공부방에서 연령과 성별에 따라 다양한 타입의 스태프가 돌봤습니다. 유아기에는 리더인 너스와 보조 역할을 하는 너스 메이드, 공부할 시기가 되면 보모 겸 가정교사 즉 여성교사와 남성 지도교사를 고용했습니다.

이때 보통의 귀족 집안은 여성 가정교사가 보모 겸 대부분을 가르쳤고 좀 있는 집안에서는 각 교양마다 교사를 불렀다고 합니다.

안주인(귀부인)에게는 레이디스 메이드, 집주인과 아이들에게는 시종이 곁에 붙어서 시중을 들었으며, 공부방을 담당하는 스쿨룸 메이드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집마다 다릅니다.)

 

사용인의 생활 구역

당시 고위 귀족 가문의 경우 300명 이상, 하위 귀족(자작~남작)이나 상층 중류의 경우 수십 명의 사용인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남녀 사용인들의 구역은 철저하게 나눠졌다고 합니다. 급여 문제도 있지만 연애에 빠지는걸 방지하는 이유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교류 장소는 하급 사용인들이 식사나 휴식을 취하는 곳 정도였습니다. 자리에 앉을 때는 긴 테이블 양쪽에 남녀가 두 줄로 반반씩 앉았으며 대도록 서로 몸에 안 닿도록 했다고 합니다. 19금 로판속의 내용처럼 테이블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경우는 꽤 많았다고 합니다.

잘 시간에는 남자는 마구간이나 본관 저택의 지하, 여자는 최상층 다락방으로 모여 자는게 보통이였다고 합니다. 각자 침실로 가는 계단도 구분되어 있고 상사가 있는 방 앞을 지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였으며 2인 1실이였기에 밀회는 거의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격무로 지친 몸으로 침대 위에 눕자마자 잠들 경우가 많기에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몰론 각 사용인의 직위에 따라서 방의 수준도 달랐습니다.

메이드는 욕실 및 화장실은 어떻게 관리했을까?

예전에는 목욕이 상당히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중세에는 목욕을 나쁜것으로 여겼기에 더욱 부정적으로 봤으며 오죽하면 프랑스에서 악취를 감추기 위해서 향수가 엄청나게 발전하는게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흔히 우리들이 로맨스 판타지에서 여주인공처럼 목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건 18~19세기쯤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온수 파이프를 집안으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고 중산층에도 비슷한 집안이 잇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 약 18세기는 사용인이 키친이나 스컬러리의 보일러로 끓인 온수로 가져와서 목욕했다고 합니다.

19세기는 수도꼭지를 틀면 온수가 나오는 저택은 집마다 달랐고 욕실은 대부분 2층 이상 장소에 잇었습니다. 메이드는 매번 목욕 때문에 무거운 물이 든 커다란 물뿌리개를 옮기는 것은 매우 힘든 노동이였습니다.

일부 집주인은 샤워를 좋아했는데, 이걸 미리 온수를 수동으로 넣어야 했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욕실은 메이드들도 사용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였습니다. 욕조 즉 소형 힙 베스를 침실로 옮겨와서 난로 앞에 두고 지하에서 온수를 길어와 입욕을 해다고 합니다.

세탁실에서 빨래를 삶을 때 사용한 물을 이용하는 경우도 잇었으며 뜨거운 욕조에 몇 번 들어갈 수 있는지는 집주인에 따라 달랐습니다. 20세기는 주 1번이 보통이였다고 합니다. (씻는건 매일 하는걸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보가 나쁜 짠돌이의 경우 식사나 위생도 안좋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한 달에 한번이나 목욕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 이번에는 화장실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화장실의 경우 보통 요강을 사용했습니다.

중세 요강
중세 요강
중세 요강
루이 13세의 앉는 요강

저걸 메이드들은 매번 치웠는데 19세기에 들어서는 하수도관의 정비나 변기의 개량으로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집은 많았다고 합니다. 야간에는 주인도 사용인도 화장실에 가지 않고, 침실에 설치된 변기를(요강)을 이용하는게 보통이였습니다.

그러기에 저걸 치우는 메이드 오브 올 워크스의 경우… 전부다 돌면서 치워야 했기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참고자료 : 나무위키,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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