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영국 차 문화와 디저트를 이어서 당시 유럽 왕족들이 즐겨 먹었던 차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당시 유럽의 귀족부터 왕족까지 누가 더 고급스러운 금과 은으로 된 세공된 도자기를(찻잔 등) 가졌는지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된 티 살롱을 누가 더 많이 잘 꾸미었는지 경쟁했습니다.
유럽에 차가 전해지던 17세 무렵, 차는 왕실에서나 초콜릿이나 커피처럼 귀한 고급 식품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약효용으로 많이 사용했지만, 말에는 귀족들 사이에서 동양의 신비로 여겨지며 동경하고 즐기게 되면서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17세기에 프랑스 왕실 의사가 최초로 【차와 커피, 초콜릿의 올바른 사용】이라는 차에 관한 설명서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인기를 힘입어 왕과 왕족들에게도 널리 퍼지면서 차 문화의 유행을 선도했습니다.
차 테라피
루이 14세기 프랑스는 ‘문예의 황금기‘로 불렸으며 각종 요리책과 미식에 관련 책들이 엄청나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몰론 미신으로 차를 담배처럼 말아 피우라는 이야기나, 순결 유지에 도움을 주거나, 기독교 사제들을 위한 음료라는 등 이상한 소문도 많았습니다.
차차 이러한 헛소문이 가라 앉고 차를 즐겨 마시기 위한 문화가 18세기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프랑스에서는 차는 없으면 안되는 필수 사치품이 되었습니다. 영국과 달리, 차가 커피만큼 유행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비싸고 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국풍을 추구하는 살롱이나 영국과 연계있는 보르도나 파리의 일부 계층에서만 소비되었습니다. 살롱은 다양한 페이스트리와 프티 푸르를 갖춘 뷔폐식으로 차를 따라 마셨고, 하인의 도움 없이 손님들이 각자 자신의 차를 따라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하인의 도움 없이 할려고하니 다기가 필요했고, 장인이 만든 좋은 다기들은 수집용, 선물용으로 유행했습니다.
초기에는 모두 중국에서 수입했지만, 돈 냄새를 맡은 유럽의 제조업체들은 중국에서 배워서 유럽식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차차 기술 개혁을 통해 표현 가능한 색조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지금의 우리가 알고있는 유럽식 다기가 유행으로 퍼져나가습니다.(로판에서 자주 나오는 애셋)
황후의 티 룸
프랑스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티 살롱이 문을 열고, 카페에서도 차를 내려 마시며, 도시에서 부자들도 즐기며 중산층들에게도 퍼지게 됩니다.
특히 왕실에서는 황후 외제니가 자신의 거처 콩피에뉴 성에 티 리셉션을 개최하며 더욱 차의 유행을 퍼트렸습니다.
티 리셉션 공간은 당시 유행에 따라 실크 옷을 입힌 모던한 가구를 두어 중국풍에 18세기 분위기를 살렸다고 합니다.
매일 오후면 황후는 10명 정도 손님을 초대하여 차를 마셧으며 가을 사냥철마다 진행되던 수련 코스 ‘콩피에뉴 시리즈’에 참가한 100명의 인사들에게는 직접 차를 내리는 은혜를 베풀었다고 전해집니다.
차와 함께 먹었던 디저트
세이버리 미니 타르트(타르트 종류들)
세이버리 프티 푸르(프티 푸르 류 디저트)
보르도 카늘레
프레지에
초콜릿, 커피 마카롱
사바랭
참고자료
구글 이미지, 나무위키, 네이버 로열 티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