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영애의 사랑 이야기(lady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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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영애의 사랑 이야기(lady romance)
출처 레진코믹스 미리보기

전편 귀족 영애의 사교계의 시작 데뷔탕스에 이어서 귀족 영애의 로맨스에 대해 알아보자 합니다.

귀족 영애의 사랑

요즘 로판은 죽음이나 파문 등 여러가지를 바꾸기 위해 북부 대공 또는 광공에게 스스로가서 계약 결혼을 요청하는게 트렌드입니다. 위 짤처럼 보통 서브남 vs 메인남 대결입니다. (보통은 메인남은 검은 머리+파란,붉은,검정 눈)

하지만 일반적인 영애들은 저런 일이 판타스틱한 방법으로 시작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가주의 허락이 없으면 마차부터 타는게 힘들고, 수행원 없이 혼자 영지 마차타다간… 각종 부랑민 + 가난한 평민(당시 영지 인구의 2~30퍼를 차지했다고 전해집니다.)에 한줌단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중세~근세까지(19세기 이전)에는 거의 인형으로 취급받는게 귀족 영애의 삶이기에 더더욱 자유로운 행동이 불가능했습니다.보통 데뷔탕스를 준비하는 영애들은 예외 없이 ‘감시역‘이 붙었습니다. 보통 감시역은 어머니나 친척 기혼여성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영애가 가는곳은 어디든 따라다녔으며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무도회에 있어도 함께 했으며, 품위에 어울리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은지 체크하고 너무 이성과 애정행각이 과하지 않은지까지 감시했습니다.

일부 영애는 너무 아름다워서, 어머니가 너무 엄격해 상대를 고르기가 힘들었다고 풍문이 전해질 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시역은 어쩔수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치면 여고생들이 남편을 찾으러 다니는 꼴이였습니다.(약 17세) 그러기에 여러가지 위협으로부터 지키고 인도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불가필했습니다.

이러한 감시역 과정에서 실천적인 예의범절을 전수하거나 춤을 가르치고, 사귀어야 할 사람을 선별해주는 등과 차후 초대 받는 입장에서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자택을 어떻게 꾸미는지 무도회나 만찬회, 점심 식사 마임, 애프터 눈 티를 개최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방문을 방문하여 인맥을 넓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교계에 데뷔하는 딸들에게 필요한 대량의 의상을 준비하는 것과 디너와 댄스를 준비하는 것도 어머니의 역할이였습니다. 이때 각종 무도회가 열리는 곳을 선별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며, 하인들에게 명령하고 무도회실 관리하는 등 왠만한 사장님 뺨치는 업무량을 자랑했습니다.

딸들도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저 무도회장을 꽃을 장식하고 대량의 케저리를 준비하는 일이였습니다. 몰론 이 경우에는 육체 노동이 엄청났습니다. 상류 계급일수록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로맨스 판타지에서 정치나 두뇌싸움이 어느 정도 감미된 장르(필자가 좋아하는 장르)가 위 처럼 방문과 개최 단계에서 여러가지 인간 군상을 겪으며 적군과 아군을 나누게 되는 부분입니다. 즉 여주인공의 사교계는 사실상 사건의 시작이자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저러한 사교계를 보내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돈 문제였습니다. 아 왠만한 수준의 지주인 귀족들은 보통 영애에게 100~200파운드를 받았다고 합니다(1년) 그 비용 안에서 옷과 미용, 책값과 교통비, 교제비 등 모든 비용에 사용되었습니다.

집안 사정이나 깐깐한 집에서는 100파운드 정도였는데 그래도 이 금액은 요리사 부부의 급여보다 높았습니다.(당시 숙련된 기술자로 분류되어 몸값이 비쌋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려면 로맨스 판타지 귀족 영애의 인생를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대략적인 수입이 적혀있습니다.

이 돈은 절약좀 하는 중하층 집안에서는 생활비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 영애들은 만성적인 적자로 허덕였다고 합니다. (고용비랑 관리 등 지출이 너무 많아서…!) 몰론 이 모든 소비와 노력은 단 한가지 ‘좋은집의 결혼’이였습니다. 즉 당시 데뷔탕스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거대한 결정사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무도회 연애의 모습

감시역‘의 역할은 단순하게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엄한 짓을 할까봐 막는 그런 단순한게 아니였습니다. 교제를 일방적으로 막는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배우자를 찾기 위한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감시역들은 자녀의 평판(영애는 순결, 영식은 명예)을 이상 없이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적당히 풀어서 좋은 배우자가 꼬이도록 유도하여 결혼에 도달시키는게 최종 목표였습니다. 즉 적당히 포위망을 조이고, 달콤한 먹이(영애)로 유혹하며 사냥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감시역은 둘을 엮어주기 위해서 때때로 영애의 무도회장의 통로를 막아서 원하는 먹이(영식)에게 유도시켜 밖의 정원 산책이나 댄스를 추도록하거나 우연을 가장하여 엮이게하는 등 여러가지 딸의 로맨스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볼품 없어 보이는 상대의 작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거하는 역할도 했습니다.(어머니나 친척 기혼 여성이 없으면 아버지나 오빠가 대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로 로맨스판타지에서 부친과 함께 무도회장을 들어와서 감시하는건 고증이다.)

 

그렇다면 항상 원하는 로맨스를 이룩할 수 있을까? 또는 경쟁자가 없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내 눈에 먹기 좋은 떡이면 당연하게 다른사람 눈에도 좋은 먹이감이다. 흔히 엄친아, 엄친딸은 모두가 선망하는 먹이감인법…!

그러기에 큰 키 그리고 잘생긴 외모, 높은 작위와 장남이라는 엄친아의 포지션을 가진 이런 차은우같은 영식은 모든 영애들이 노리는 최고의 먹이감이였다. 그러기에 수 많은 ‘감시역‘들이 달려들었으니 해당 엄친아가 많은 영애에게 고백을 받고도 답변을 미루면서 고르는건 당연한 이치였다.

흔히 로맨스 판타지에서 나오는 엑스트라? 악역 등이 적의를 담은 시선이나 험담 등은 고증된 표현이라 봐도 무방했다. 당시를 묘사하는 여성 작가들의 19세기 수필을 보면 저런 것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묘사가 나온다.

또한 여주인공이 남주와 만나고 있을 때 서브 남주가 저택에 방문하면 부재중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쫒아내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웃긴게 이것도 고증이다. 당시 하인이나 집사가 부재중이라고 말하면 방문한 사람은 진위 여부를 묻지 않는게 매너라고 했다. 설사 양다리 걸치고 있는 상황이 떡하니 보여도 아무짓도 못했다. 만약 무시하고 쳐들어가면 이미지가 상당히 타격 입었다고 전해진다.

 

여성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

당시 귀족 영애들은 상당한 돈을 소비했다. 각종 소비 습관이 중산층 한 가정의 연수입에 달할 정도였기에 이러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재산과 수입을 굉장히 중시했다고 한다. 현대로 친다면 막 된장녀 김치녀 이러겠지만 교활하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태생이 귀하지만 따로 재산이 없는 영애들이 현재 수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자 남자를 잡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사실상 귀족 여성에 대한 재산이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그 전편에서 가정교사가 귀족 영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관련 링크) 그게 사회 통념상 다른 일을 하는건 용납이 안되었다. 그러기에 대부분 생활은 부친에 의지하는 구조였다. 그러기에 귀족 여성들을 ‘말 잘듣고 이쁜 인형‘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새로운 가주가 가정을 얻어서 본가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 미혼 자매는 모친과 함께 작은 집으로 옮겨서 형제나 친척이 주는 용돈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원래 생활에 대비 좀 많이 궁핍한 삶을 살게된다. 또 자매의 수가 많은 경우 일부러 시집을 보내지 않고 가정부 대신 부모를 모시도록 유도했다.(사실상 말벗, 그럼 딸의 인생은…?)

 

귀족의 결혼 순서

가장 저렴한 방법은 ‘결혼예고’로 3주전부터 일요일마다 지역 교회에 이름을 읽으며 발표해준다. 이때, 예고를 시작한 시점에서 둘중 한명은 해당 교구에 15일 이상 거주해야 조건이 만족한다. 예고를 발표하는 3회의 동안 참례자들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3개월 이내에 어느 한쪽 교구 교회에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있으면 결혼이 가능해진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대중들 앞에서 발표되는게 싫고 돈이 많다면, 지역의 성직자나 런던의 ‘민법박사회’에 2파운드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허가증’을 받고 위 15일 이상 거주 후 식을 올릴 수 있다.

세 번째는 영국 국교회의 대주교에게 청원해 특별한 사정을 설명하고, 약 30파운드를 지불 후 ‘특별 결혼 허가증’을 받고 성직자와 증인의 입회하에 결혼이 성립되면, 그 자리에서 등록부에 사인한다. 18세기 이전에는 영국만 가능했지만 19세기 중반부터는 다른곳에서도 가능해졌다.

추가로 성직자가 필요없는 ‘시민 허가증’으로 식을 올리는게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교회쪽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집안에서 반대하는 케이스도 결혼하는 방법이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19세까지 위와 같은 법이 적용 안되서, 거기로 도망가서 결혼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결혼하는 경우 아이가 생겨도 서자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 다시 영국 교회로 돌아와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자료

나무위키

워릭대학교(영국의 서울대 같은곳)

책 : 중세 유럽의 생활, 영국 귀족의 영애, 사랑방에서 듣는 서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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