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편 귀족 영애의 사랑 이야기에 이어서 결혼에 대해 작성하고자 합니다. 로맨스 판타지에서 결혼은 무엇인가요!? 보통은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수 많은 시련과 갈등을 극복하고 마지막화에 행복하게 이어지는 결혼식이 엔딩입니다!
로맨스 판타지의 배경이 되는 19세기의 귀족의 결혼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합니다.
신부의 준비
전세계 모든 신부들이 겪는 준비 과정이다. 식장과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물어보며, 초대할 손님 리스트를 작성 후 발송한다. 통상 결혼식에서 6개월에서 3개월까지 다양하게 준비하게된다. 지금과 전혀 차이가 없다. 다만 지금과 다르게 오늘날에는 결혼 후 집안에 쓸 가정제품이나 가구를 보통 혼수라 부르는데 이 19세기는 조금 다르다.
당시 혼수로는 신부의 옷과 속옷, 장식품 등을 일상 용품과 웨딩드레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중세에도 비슷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파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8~19세기에는 출판사 잡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신부의 계급과 집안 재산에 따라 혼수 예산이 달라진다고 적혀있었다.
가난한 귀족과 결혼 예정이면 50파운드, 30파운드를 사용할 신부는 드레스를 실크 아닌 천으로 준비하라고 작성되어 있으며 상류층 귀족은 100파운드를 준비할 신부에게는 고급 실크나, 알파카 털 드레스, 속옷 등 의복 외 손수건과 타올을 추가하라는 에티켓이 발행하기도 했다. 죽어도 귀족이다…
귀족의 상견례 ‘혼인계승재산설정’
자 혼수까지 끝났다. 하지만 귀족의 결혼은 그냥 사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옛날 조선시대의 양반 결혼처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다보니, 양측 집안은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여 교섭을 하였다.
양가의 부모는 각자 자신들의 변호사를 세우고, 돈에 관하여 상담을 하였다. 전편에 작성한 글 처럼 귀족은 스스로 일하여 벌지 않기에, (가정교사나 그런 경우 예외적) 직업으로 버는 수입이 있어도 생략한다. 즉 신혼 가정의 수입원이 되어 주는건 바로 부모님이다.(사실상 부모님의 용돈으로 살아가는…)
정식 상속 전에, 성인의 경우 결혼을 계기로 재산의 일부를 나누어주는 일은 많았다.(그래야 독립하지) 영식에게는 따로 집과 생활 자금을 주었으며, 영애의 경우 지참금을 주었다. 양가는 자녀들에게 준 자산을 합쳐 대신 안전 자산(채권 금 등)에 투자하여 나오는 이자로 신혼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기에 양쪽에서 얼마나 낼 것인지, 아내의 개인 자산으로 쓸 수 있는 부분, 즉 이자에서 아내에게 주는 용돈과, 손주에게 줄 분여금 그리고 유사시 친척이나 형제자매에게 원조해줄 금액에 대해 협상하게되며, 만약 남편이 먼저 떠나 과부가 되는 경우, 괴부 급여는 얼마로 할 것인가, 반대로 아내가 아이 없이 사망시 지참금에 행방에 등 많은걸 몇 달에 걸쳐 상의하고 결정했다.
또한 더욱 나아가 한사 상속에 여부, 부동산의 사용권 등 상속에 관한 모든걸 논의했으며 특히 여성측의 부모는 조금이라도 딸이 유리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교섭을 진행했기에 위처럼 오래 걸렸다. 이제 모든걸 끝나면 공증 단계로 법률가를 통해 문서화된다. 이번 소제목의 이름 그대로 ‘혼인계승재산설정‘으로 불렸다.
각 집안의 재산과 파워가 달랐기에 조건이 수 없이 달라졌다. 아무리 비슷한 급의 귀족끼리 만났해도 여성 자체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어 설정하는 재산의 대부분은 신부측의 지참금로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만약 지위가 더 낮고, 재산이 많다면 더 많은 돈을 내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보통 남성쪽보다 3~5배까지 신부측이 돈을 더 많이 냈고 그 이자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케일이 상상 초월했다. 마치 대기업의…)
귀족의 결혼식
이러한 험난한 고난을 극복하고 도달한다면 이제 결혼식이 남았다. 당시 결혼하는 날은 보통 6~7월에 많이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 문제로 사순절이 걸리는 3,5월은 제한되고, 후반기는 사교계가 활발할 때와 겹친다는 이유 때문이였다.
어째든 결혼식을 진행을 위해서는 중세~근세까지는 아침 08~12시까지로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오후 3시까지 연장되었다. 식이 끝나면 하객들은 신부의 집으로 돌아가 축하연에 참가하고, 16세기에(?) 있던 브라이덜 샤워이(관련 문헌이 있다면 제보 바람) 아닌 ‘웨딩 브렉퍼스트‘라고 부르는 피로연(점심식사)을 열었다. 방식과 형태는 다양했지만 집안마다 달랐다.
당연하게도 그 결혼식에 초대 받은 사람은 신혼 커플에게 뭔가 선물하는게 매너였다.(오늘날에도 결혼식에서 축가나 영상 등 무언가 이벤트를 만들어준다) 아무래도 귀족급이 되면 서로 경쟁하듯 고가의 선물을 멀리서 보내게 된다. 몰론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침대가 없는데 최고급 요가 온다든지…(그런일은 없겠지만)
신혼여행
결혼식이 끝나면 이제 신혼여행을 떠나게된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을 떠나지만 당시 귀족들은 특이했다. 19세기 초반까지 신혼여행은 가족과 함께 친척집에 방문하는게 보통 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단 둘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유행이 퍼지자 성을 가지고 있는 친척에게 빌려서 신혼을 보내는 풍토가 생겼다.
웃긴건 가끔 씩 빌려주는 측에서 하인과 말 마차를 다 남겨두는 배려땜에 고통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신혼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하인과 차지인들이 저택 앞에서 집합하여, 주인 부부를 마중하는게 관례였다(그러니까 로판의 장면은 고증된 내용이다!) 또한 주인이 결혼하면, 영주민과 하인들은 돈을 모아 선물을 했다고 한다.(현대와 비교할게 아닌게 하인들은 주인을 애기때부터 돌봐왔기에 가족으로 느꼇다고한다.)
다음편은 로맨스 판타지의 결말 이후 에피소드 내용인 결혼 이후의 생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영국 귀족의 영애, 서양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