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직업 : 팔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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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직업 성기사
판타지 직업 팔라딘
출처 구글 이미지

 

판타지 직업 시리즈 제 4탄 팔라딘입니다. 이단심문관과 다르게 디팬스 및 서포트쪽으로 특화된 직업입니다.

판타지 직업

팔라딘

신의 가르침에 따라 빛의 힘을 두르고, 사람들을 이끌며 어둠을 떨쳐내기 위해 싸우는 기사입니다.

자격: 고결하고 신앙심이 두터우며 인격자인 자, 기사와 신관의 능력을 겸비한 자

대부분의 스펙이 팔방미인이며 체력과 완력쪽이 좀 더 높은 직업입니다. 보통 새하얀 갑옷이 대표 이미지며 타인의 모범이 될 만한 도덕심으로 가득 찬 행동을 하고, 성전에서는 랜스를 쥔 채 군마를 타고 전장을 질주합니다.

일반적인 호위, 수호 활동에서도 화려한 칼 솜씨로 적을 압도합니다. 거기에다 치유와 방어 능력이 뛰어나며 신성력으로 몸이나 무기를 강화하여 언데드나 악마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공격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성기사는 신의 위엄과 권위를 대표하는 직업입니다. 그렇기에 요구되는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검술,창술,기마술, 각종 신앙에 대한 지식과 고결한 정신 그리고 기사도와 귀족 예절도 충분히 익혀야합니다.

성기사단은 종교의 간판과 같은 역할을 하고있기에 야만적인 행동은 지양해야하며, 자신의 행동이 자칫 잘못하면 조직에 영향을 주기에 상당히 신경이 많이가는 직업이다.

주로 귀족들 중 장남이 아닌 차남들이 기사 다음으로 많이 가는 직종이다.(기사가 제한될 경우, 용병도 많이 간다.)

 

성기사는 계율이 많은 직업이지만,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나 종교 같은 조직이 뒷받침해주는 만큼, 여러가지 혜택을 받는다. 무장 면에서는 검부터 기마까지 모든 것이 제공되고(국교일시), 보통 전사나 병사가 구매하기 힘든 고가의 맞춤 갑옷에 착용을 도와주는 종자와 함께 지급 받으며 전공을 세우면 명예로운 성검을 하사받기도 한다.(세계관에 따라 다르다)

미래 지향적으로 관련 직업의 경력은 매우 좋다. 기사단과 종교와 관련된 연줄로 귀족이나 사교같은 권력의 중추에 있는 사람들에 인연이 닿기에 보통 기사보다 작위에 가깝고, 추기경이나 대시관 같은 높은 자리에도 오르는게 불가능하지 않은 엘리트 직업이다.

다만, 성기사는 신에게 맹세한 기사라는 점이 있기에 계율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부귀나 사치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할 경우 신성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것을 잃고 쫒겨날 수도 있다. 또한 신의 뜻을 따라야하기에 신의 이름으로 해서는 안되는 행위도 어쩔수 없는 임무까지 참고 해야될 수도 있다. 사실상 군인이다.

성직자이기도 한 성기사의 생애는 안정적이긴 해도 절대 윤택하지는 않다. 오히려 서민이나 일반 기사들의 모범이 될 소박함이 요구된다. 지위나 부에 집착하는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직업이기도하다. (사실상 현대로치면 종교의 사관학교 출신 장교다)

 

팔라딘의 역사

프랑스 이야기에서 샤를마뉴의 궁정 내 가장 뛰어난 전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어는 《롤랑의 노래》 등 초기 무훈시에서 처음 발견되며, 유럽에 침공한 사라센인에 맞서는 기독교적 용맹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보통 지금 널리 알려진 팔라딘 개념이나 관련 이야기와 이미지는 거의 최근에 들어서 창작되었다.

 

‘팔라딘(paladin)’의 어원은 로마의 팔라티누스(palatinus) 언덕이다. 이 언덕은 전설상 고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형제가 늑대와 함께 발견된 곳으로 전해지며, 역사적으로도 도시국가에서 영역 국가로 성장하기 전까지 로마 시의 핵심적인 신전들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 이후에도 주로 황제나 귀족들의 궁전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유명하였기에, 여기서 착안하여 궁전이나 성역을 뜻하는 단어들이 파생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영어 Palace나 독일어 Pfalz가 있고, 로마 제국 시기 황궁을 관리하는 황제의 측근도 팔라티누스로 불렸다. 그 외에 궁재(Maire du palais)나 궁정백(Pfalzgraf) 등 궁전에 관한 다른 용어도 여기서 파생하였다. 이러한 개념이나 어휘는 서로마의 붕괴 후에도 그곳에 자리잡은 여러 게르만계 왕국에도 계승되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미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종전 로마 제국의 근위대인 프라이토리아니를 해체한 후 이 언덕의 이름을 따서 친위기병대 스콜라이 팔라티나이(Scholae Palatinae)를 명명한 바 있고, 궁정 내 무장가신으로서의 기사의 이미지가 궁재나 궁정백 등 궁정 관료의 어휘와 결합하면서 중세 문학 속 개념이 탄생하였다.

프랑크 왕국이 교황에 의해 새로운 서로마로 선포되자 프랑크의 국왕 직속 기병대원에게 이러한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당대 유명한 기사의 무훈을 기리는 롤랑의 노래 등에 등장하는 샤를마뉴의 12기사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궁정에서 기거하며 왕을 수호하였다. 카롤링 프랑크 제국이 해체된 후에도 동프랑크 왕국을 거쳐 새로이 서로마 제국으로 불리게 된 신성 로마 제국이나 서프랑크 왕국을 계승한 프랑스 왕국을 위시한 유럽 각국에서는 군주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궁정 기사나 교회를 수호하는 고위 기사 및 귀족에게 팔라딘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수도자가 아닌 평신도 기사 중 교황의 명을 받아 교황청을 수비하거나 재판을 실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즉, 이단심문관 역시 상당수는 팔라딘이었다. 비록 중세에서 근대로 다가갈수록 유럽의 봉건 사회가 해체되고 교황의 힘도 점차 약해지면서 그 영향력은 물론 교황령 자체도 줄어들어 팔라딘의 권한이 줄어들었으며, 르네상스 이후 전술의 변화로 기병보다 보병이 중시되어 교황청의 실질적인 방위를 담당하는 주력이 스위스 용병으로 바뀌면서 팔라딘의 필요성 자체가 점차 줄었으나, 팔라딘 조직 자체는 평신도로 이루어진 군사 조직으로서 교황청 방위를 담당하는 한 축으로 존속하였다.

리소르지멘토로 인해 교황령이 영토 국가의 자격을 상실한 뒤에도 팔라딘 조직은 존속했으나 더 이상 교황령이 상비군 부대를 대규모로 보유하는 것은 곤란해진 관계로 팔라딘 대원들은 평시에는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고, 훈련 이나 긴급 상황 때 동원되는 예비군 형태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무렵에도 교황을 무시하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교황청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합병을 시도했을 때, 팔라딘은 스위스 근위대와 함께 총포로 무장한 채 교황청을 포위한 이탈리아군과 대치했으며, 이들의 죽음을 각오한 기세와 국제 여론의 악화, 국내 가톨릭 신도들의 반발에 눌린 무솔리니가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실질적 기능은 거의 상실하였어도, 상기한 전통에 따라서 19세기까지 공적이 많은 이들에게 명예로운 호칭으로서 팔라딘의 칭호가 내렸고, 한 세기 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의 심복 헤르만 괴링도 히틀러로부터 팔라딘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현재도 이 단어는 이러한 역사성에 근거해 간혹 궁정 기사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교황청의 예산 문제와 대외적으로 평화주의를 내거는 현대 가톨릭의 이미지상 군사 조직의 보유 필요성이 적어진 점, 라테라노 조약으로 이탈리아의 침공 위협 자체가 사라진 점, 교황령이 협소하여 팔라딘을 모집하여 군사 훈련을 시킬 공간상의 여건이 안 되는 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해체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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