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정보글 27부 마녀와 서큐버스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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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서큐버스

중세 유럽 민간신앙 – 마녀 및 서큐버스 전설에 대해 알아보자 합니다! 이번에는 신화쪽으로 많이 작성했기에 상당히 루즈하고 재미 없을 수 있습니다.

 

서큐버스의 기원

중세 유럽에서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악마들 중에 여성의 모습을 취해 남자들을 꿈 속에서 유혹해 성관계를 갖고 그 정기를 빼앗는 악마 서큐버스이다.

사실 ‘서큐버스’란 단어는 고대 로마시대 라틴 단어 INCVBVS(인큐버스)에 기인하는데, 이 단어는 이는 ‘꿈꾸는 사람 위에서 잠 자는 정령’을 뜻합니다.  ‘정령’ 이전에 단순히 그리스어 ‘Εφιάλτης'(에피알테스), 즉 ‘악몽’의 직역입니다.

유럽 중세기에 이르면, 단어의 뜻이 야하게 변해졌습니다. 남자들이 성욕을 절제하고 노력해도 몽정은 생리현상이기에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종교적 절제와 성욕의 억압을 미덕으로 삼는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이 ‘민망한’ 불가항력을 설명하기 위해 악마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형 미녀 악령이라는 기똥찬 존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고유의 개념은 아닙니다. 서큐버스란 단어 자체의 유래와 변형은 기독교 문화의 산물이지만 그 개념과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 시대 때부터 반복되어 표현되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의 양치기 “엔디미온”의 잠에 빠진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밤의 여신 셀레네의 이야기는 수많은 조각품에서 거듭 보여지는 것이 등에 날개가 달리고, 머리에는 초승달 형상의 뿔을 단 것으로, 흔히 묘사되는 셀레네가 잠을 자고 있는 젊은 남자의 위에 강림하는 형상, 즉 지금의 서큐버스의 원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 로마 속 셀레나
그리스로마 만화책에서의 셀레나 묘사

서큐버스의 원본으로 추정되는 여신 세레네의 전설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 중 하나로 엔디미온은 잘생긴 목동으로서, 달의 여신 셀레네의 사랑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엔디미온의 아름다움이 영원하도록 셀레네는 제우스에게 부탁해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잠을 선사했으며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성교를 통해 메나에라고 불리는 50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훗날 50명의 메나에는 고대 그리스의 50개의 달(lunar month)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달의 여신 셀레네의 전설로 인해 달의 여신 셀레네의 이미지가 훗날 ‘달이 내뿜는 음기’라는 개념으로 정착되면서, 기독교 정착 후 인간이 가지는 음란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고 바로 ‘달이 음기를 발산하는 시기’라는 상식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그 ‘이미지’가 존재하긴 했으나 몽정과 악령을 결합시킨 개념이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달에서 내뿜는 음기로 남자가 몽정 즉, 몽정과 관련된 신화적 이미지가 형성 되었는데 그렇다고 현재의 이미지까지 형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몽정 자체에 대한 직적접 언급이 나타나는 서기 2세기 경 에페수스의 의사였던 소라누스의 저서 “On Acute and Chronic Diseases”(급성과 만성 질병에 관하여)인데, 여기서는 몽정을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분류합니다. 평소 ‘상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그것이 꿈 속에서 누군가에게 유혹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이는 그 사람의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박쥐 날개와 뿔을 달고 있으며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몽마라는 현대 판타지의 서큐버스 이미지는 대체 어디서 형성된 것인가? 이건 마녀를 먼저 확인 후 서술하겠습니다.

 

마녀의 기원

마녀의 경우 당시 유럽에서 유령, 엘프, 뱀파이어 등과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다고 중세 사람들은 믿고 있었으며, 밤에 날아다니거나 함께 모여서 축제를 벌이는 여자들이 있는데, 이때 어린아이나 어른들을 죽여서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꼭 마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발생했는데요, 그 뿌리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신들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모르는 상태였기에 중세 사람들은 이런 존재에 대해 이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3세기말 후고 폰 랑엔슈타인의 “마르티나 Martina”나 14세기 “고백서”에서 “헥세 hecse”란 단어가 보이지만, 위에서처럼 중세 사람들은 이 단어를 일반적으로 여성을 특정 짓는 마녀로서만 쓰이지 않았다. 즉 옛날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숲 속에 동떨어져 사는 사람이나, 현세와 내세를 매개해주는 상징적인 중간자적 존재, 혹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약초에 대해 특별한 지식을 가졌거나, 예지력이 뛰어난 사람을 통칭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돈이 없어 교회, 의사에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농민들이 마녀들은 치료해주며 보살펴주고서 소정의 보답(보리 무 등) 받았기에 실제 가난하고 위험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에서 마녀 잡는 망치(이단심문관 저자) 교본 해석이 추가로 되었습니다. 즉 마녀와 마법에 대한 믿음이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간의 만남과 결부되었다. 마녀의 특이한 능력들은 인간이 아닌 이계의 존재와의 만남과 계약으로부터 획득한 것,

즉 마녀와 악마와의 성적 관계까지 상상력이 미치게 된 것이다. 훗날 15세기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승인으로 <지고의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반포 후 마녀사냥의 가장 큰 빌미가 되고, 대중들에게 가장 호소력이 높은 죄목이 되었습니다.

 

마녀사냥은?

마녀 witch 중세 유럽의 어두운 그림자 마녀사냥. 마녀사냥의 지침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 발생했습니다. 마녀라는 이름으로 기소당하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죄목은 다양했으나,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악마와 결탁하여 마법을 부렸다는 것이었다. 마법이라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근거로 자행되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은 과거보다 ‘진보’했으며 ‘합리주의’를 주장하던 르네상스 및 과학혁명 시기와 모순되어 유럽 근대 초를 다각도로 연구하도록 돕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다만 마녀사냥은 중세 유럽 12c-13c초기부터 존재했으나 오랜 시간 진행되었던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는 위에서 거론한 것과 같이 교황이 승인한 15세 이후 근대 과학철학이 태동하기 시작되었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1560년에서 1660-1700)년대였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마녀들이 특히 이 시기에 주변 이웃에 의해 고발당했으며, 특별재판소에 회부되어 이단심문관으로부터 고문을 받는 과정 가운데 죄를 자백한 뒤 형을 당했다.

배경에는 여성에 대한 증오, 탐욕, 사회적 위기, 종교적 교의가 뒤엉킨 사회의 희생양이었다. 중세 유럽은 질병과 굶주림, 재난, 외부로부터 침입해 오는 이교도들의 공격, 교황권에 대한 저항, 그 참담한 현실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에게 교회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 대상이 마녀였고, 그 불길한 역사의 광기가 마녀사냥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복성 마녀사냥이 많았는데 부유한 미혼 여성 또는 과부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많이 당했으며, 다른 여성들의 시기로 고발 당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실제로 마녀(魔女)는 존재했습니다. 고대 이집트나 인도를 비롯하여 헬라 로마 사회에도 마녀는 존재했고, 아프리카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소수 종족들에도 신적 의식을 행하거나 주술로 치유를 행하는 마녀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현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마녀가 일본의 무녀입니다.

마녀는 사람들은 악령으로부터 보호 받기위해 주술적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고, 치유나 문제해결을 위해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신의 힘을 이용하는 이를 요청하게 되었다. 이런 사회적 요구는 자연스럽게 신통한 여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병을 고쳐주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거나, 병의 원인을 적시해주는 등 행위로 숭배되기도 했으나, 14세기를 거쳐 가면서 저주스러운 마녀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이것은 중세교회와 깊은 관련을 지니는데 당시 교회는 이들 집단을 이단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단’이라고 낙인찍히면 헤어날 길이 없었다. 마녀의 존재에 대한 확인과 함께 마녀에 대한 판별 기준이 마련되면서 이들은 마녀라는 이유로 박해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수 많은 악령과 무관한 여성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희생양으로서 불길 속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이다. 위기에 처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지금은 성인으로 평가되지만 그 당시는 마녀로 낙인 찍혀 화형대에 서야했었다.

바로 수도사 하인리히 크리머와 야코프 슈프렝거 / 스프랜저라는 광신 수도사 2명이 집필한 마녀 사냥의 기념비적인 매뉴얼 – [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Malleus Maleficarum – Hammer of Witches 마녀의 망치] 1486년에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 헨리쿠스 인스티토리스와 야코프 슈프렝거에 의해 출판되었다.

당시 교황 이노센트 8세은 이런 건의를 바로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말한것 처럼 교회에 돌보지 못하는 가난한 농민들을 치료해주는 존재였기에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하지만 차차 교회의 힘이 약해지고 외세의 영향력으로 사회 불만을 돌리기위해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황 이노센트8세의 추천을 받은 이 책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마녀사냥의 기본 매뉴얼이었습니다. 이 책은 1520년까지 13판이나 출간되었고, 1700년 이전까지 독일에서는 16번이나 발간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 마녀재판의 지침서로 사용되었던 이 책은 마녀사냥을 다루는 대부분의 백과사전과 저서 및 연구논문에서 언급이 되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브라이언 P. 르박(Brian P. Levack)은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을 두고 “직접적으로 광적인 마녀 재판의 열기를 부추긴 것은 아니나 유럽 전역의 마녀사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최초로 서큐버스라는 정의를 냈습니다. 여기서 말하길, “서큐버스는 꿈 속에서 나타나 남자의 정액을 갈취하고, 이 정액을 다시 인큐버스로 가져다가 여자의 꿈속에서 여자에게 집어넣어 악마의 자식을 잉태하게 한다.”

이 책에서는 마녀의 특징을 기술하고 이들이 주술을 행하는 이유를 밝히고 마녀는 이단자이며 배교자이며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마녀라는 이름을 얻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음의 숙명을 안게 되었다. 이단적 주술의 확산을 두려워한 교황은 마녀들이 행하는 사설(邪說)에는 교리적 성격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단 심판관들에게 마녀를 최악의 이단으로 취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런 과정에서 14세기 말에는 개인으로서의 마녀가 아니라 사교의 집단으로서 ‘마녀의 종파’가 탄생했다. 과거에 병을 치료해 주던 여성은 악마와 결탁한 ‘마녀’가 되었고, 보통 사람과 다른 신통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녔던 이들은 악마와 내통한 ‘마녀’로 간주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녀는 주문을 걸어 부부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불임을 만들거나 아이를 질식시키고, 가축을 병들어 죽게 하고, 사람들의 신체를 마비시키기도 하고, 바람을 일으키거나 밭에 우박을 내리게도 한다. 몸을 무기로 지독한 냄새 발산하기도 하고, 사악한 시선을 발하여 상대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악마로 치부되던 이들은 사회적으로 가난한 이들이었고, 도시출신보다는 농촌 출신의 가난한 여성들이 절대 다수였습니다.

 

마녀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자는 얼마나 될까?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재판관 피에르 드 랑크르가 1577년에만 400명의 마녀를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로렌지방의 재판관 니콜라 레미는 1576에 2,3천명에게, 스트라스부르그의 경우 1582년 10월에 134명의 마녀가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 열광적인 카토릭의 트리에르의 대주교 요한 폰 쉐네부르그에 의해 1587년에서 1593년까지 22개처 마을에서 368명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뷔르츠부르크의 주교 필립 아돌프 폰 엘렌베르크는 1623년부터 1631년까지 8년간 99명을 바이에르 교구에서는 1629년에만 274명을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독일은 유럽 제일의 마녀사냥 국이었는데 마녀들을 잔인하게 탄압하였고, 마녀전용 감옥이 있었을 정도였다. 독일에서는 1500년부터 1749년까지 약 3만-6만만명 이상이 화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헐적으로 알려진 통계만 보더라도 ‘마녀’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세일럼 마녀사건 등 마녀사냥이 192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오스트리아, 이탈라아 등 유럽의 다른 나라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마녀라고 하니 여자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희생된 ‘마남’(摩男)도 있었고 그 숫자는 10-15% 정도였다.

 

다시 돌아와 서큐버스 기원

민중 문화에서 유래된 악마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에서 일반적으로 남성형 악마들에게만 집중하던 다른 악마학 저서들과는 달리 인큐버스나 서큐버스를 동시에 언급함으로써 여성형 악마들에게도 집중하고 있다.

여성형 악마에대한 주목은 민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2부 질문 1의 4장은 마녀가 어떤 방식으로 인큐버스에게 몸을 바치는지에 대해 다룬다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를 민중 신앙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릴리트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대교 신비주의의 경전인 조하르(Zohar)에 따르면, 릴리트는 크리스트교 문명권에서 인류의 첫 조상으로 이야기되는 아담의 첫 번째 부인이다.

낙원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생활하였는데, 여러 부분에서 맞지 않았지만 특히 성관계 문제가 그러했다. 아담과 릴리트는 늘 정상위(正常位)로만 성관계를 가졌는데 릴리트는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전해지며 릴리트의 생각에 아담과 자신은 동시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평등한 존재였으며, 따라서 자신이 늘 아담의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담이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자 그녀는 바로 낙원에서부터 탈출해버렸다.

그 후 릴리트는 음란한 악마들로 가득 차 있던 홍해 근처에 자리를 잡고,악마들과 자유로운 성관계를 즐겼으며 이윽고 악마의 왕인 사마엘의 신부가 되었다. 신은 릴리트가 회개하기를 바랐으나 그녀는 듣지 않았고, 결국 화가 난 신은 아담에게는 릴리트와는 달리 순종적이고 온유한 성격의 하와를, 릴리트에게는 낳는 아이마다 모두 죽는 벌을 내렸다.

 

화가 난 릴리트는 아담에게 복수하고자 뱀으로 변신하여 하와를 꾀어내 신이 금지한 생명의 나무 열매를 섭취하게 하였고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쫓겨나도록 만들어버렸다. 릴리트가 낙원을 탈출하여 악마와 관계를 가지고 아담에게 복수하는 과정은 전해져 내려오는 내용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적어도 모든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릴리트가 아담을 벗어나 악마의 부인이 되었으며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쫓아내는 데에도 성공했다고 언급한다.(다만 기독교에서는 이 뱀을 사탄으로 보고있다.)

릴리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에덴 동산에서의 복수 이후 릴리트의 삶은 이성에 대한 유혹과 유아 살해라는 두 가지 활동으로 함축된다.(디아블로 4에서 잘 묘사된다.)

릴리트는 밤에 배회하는데,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성들을 조롱하고 정액을 내뿜도록 만든다. 남성이 혼자 잠들어 있는 모든 장소에 나타나는 그녀는 그를 움켜쥐고 그녀 자신의 몸을 그에게 붙인 뒤 그로부터 욕망을 채운다. 또한 남성이 병에 들게 만드는데 정작 그는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이 모든 일은 달이 사라질 때 일어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인큐버스와 서큐버스에 대한 기원은 고대 신화에서시작되어 민중들의 상상에 의해 전승되었다. 인큐버스와 서큐버스신화에서부터 비롯되어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으로 이어졌다고이야기할 수 있는 두 가지 주요한 특징은 여성형 악마의 등장과 악마와의성관계에 대한 주목이다.

실제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 인큐버스 및 서큐버스와 관련된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하고 있다. 인스티토리스에 따르면, 코블렌츠에 사는 한 남성은 아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큐버스에게 농락당했다. 이 외에도 인큐버스에 의해 몸이 아니라 마음이 더럽혀졌다며 성교에 동의한 적 없다고 울며 주장한 어느 처녀에 대한 이야기, 밤마다 인큐버스의 유혹을 받던 여자가 그녀의 친구를 침대에 대신 재우고 자신은 편하게 잘 수 있었다는 이야기, 프랑스 아키텐(Aquitaine)에 살고 있던 한 여자가 6년 동안이나 인큐버스에게 괴롭힘을당했다는 이야기 등을 찾을 수 있다

몰론 위와 같은 증언이 나오는 이유는 기독교가 자손 번식을 위한 성교 외에 쾌락을 쫒는걸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결혼하지 못한 서민층 여성의 경우 연애나 강간으로 임신하는 경우도 흔했는데 이때 빠져나오기 위해서 서큐/인큐버스를 이용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실질적으로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는 마녀사냥의 근간이 되는 민중설화와 악마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몽정과 상상임신 등 실제 생활에 관련된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남녀의 성관계 문제를 다루고 있어 일반 민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생소한 내용이 아니었고, 따라서 이들이 쉽게 마녀사냥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인류에 재앙을 불러일으킨 책들, 위키백과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의 악마와 마녀, 마술 개념 한국서양사연구회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의 악마와 마녀, 마술 개념

야콥 슈프랭거, 하인리히 크라머 저 –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 사냥을 위한 교본 우물이있는집 이재필 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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