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찰리 멍거를 비롯한 대가부터 투자 인플루언서들까지 공통적으로, 투자에 있어 첫 1억원을 모으는 게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나름대로 곡절을 겪었고 빨리 모은 편도 아니었지만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내가 모은 방법론을 간략하게 써 보려고 한다.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고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다. 실천하는 게 문제일 뿐. 누구에게나 원칙은 있지만 원칙을 지키는 게 항상 가장 어렵다.
사람마다 환경도, 수입도, 지출도, 목표 금액이나 기간도 제각각이므로, 아래 내용이 모두에게 맞는 이야기일 수는 없다. 각자 필요한 내용만 취사선택하면 될 듯.
수 입
수입은 당연히 근로소득이다. 시드 없이 금융소득만으로 1억원을 만들려면 정말 운이 좋거나 수익을 내기 위해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근로소득이 있고 이걸 꾸준히 모을 수 있다면 목표 달성이 비교도 안 되게 수월해진다. 1년 수입이 얼마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1억원까지는 금융소득 없이 근로소득만 성실하게 모아도 대개 n년이면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시드를 모으기 위해 부업을 추천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부업은 안 해서 잘 모르겠다.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특별히 운이 좋지 않은 이상, 1억원은 대부분의 비중을 근로소득으로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어지간한 수익률로는 금융소득의 절대 금액이 티가 안 난다.
지 출
수입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보다 지출을 통제하는 게 더 쉽다. 투자 인플루언서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슨 커피값 아끼고 밥값 아끼고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된다. 실제로 계산해 보면 얼마 안 한다. 특히 밥값은 사실상 고정 지출이나 마찬가지다. 너무 아끼려고 들면 건강 해치고 나중에 병원비로 청구될 수 있으니 잘 먹고 다니자. 당연하지만 비싼 거 먹으러 다니는 건 논외.
수입에서 티끌을 모아봤자 티끌이듯 지출도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다. 1만원 이하의 생필품을 살 때까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필요 이상으로 자주만 안 사면 된다.
통제해야 하는 지출 목록은 다음과 같다. 술, 배달음식, 옷, 여행, (금전감각을 왜곡하는) 취미 등.
술, 배달음식이 커피나 그게 그거 같지만 꽤 차이가 있다. 커피는 티끌이라 1개월 누적해 봐야 술, 배달음식 1~2회 금액밖에 안 나온다. 술, 배달음식은 반드시 줄여야 한다. 여행이 취미라면 가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지만 돈을 모으고 싶다면 횟수를 줄이고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이다. 또한, 금전감각을 왜곡하는 취미도 안 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RPG나 가챠 게임. 자신이 무소과금 기본 패스만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해도 된다. FOMO에 대처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을 듯. 나는 가챠 게임으로 좀 까먹었다.
투 자
금융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는 가정 하에, 공부를 먼저 하고 실전 투자를 시작해야 하는가, 아니면 공부와 동시에 실전 투자도 같이 시작해야 하는가 중 하나를 고른다면, 개인적으로는 후자다. 이론을 갖추고 시작해서 나쁠 건 없겠지만, 실제로 쳐맞아 봐야, 수업료를 내야 배우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수업료를 안 낼 수 있으면 좋지만 내야 한다면 시드가 작을 때 내야 한다). 주식 투자는 기본적으로 복리기 때문에 일단 빨리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도 있다.
투자를 시작했다면 최대한 다양한 투자 기법을 공부하고 적용해 보는 것이 좋다. 결국 투자도 성격 따라가긴 하지만 정확히 어떤 투자 기법이 나에게 맞는지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 역시 국장 테마주부터 시작해서 매크로, 퀀트, 성장주, 가치주 등 기본적인 투자 기법은 겉핥기로나마 공부하고 적용도 해 보면서 내게 맞는 투자 기법을 찾아 왔다. 투자관이 어느 정도 확립된 지금도 공부는 계속 하고 있다.
투자 초기에는 시드가 작고 리스크에 대한 인식도 없어서 몰빵 투자를 하기 쉽다. 하지만 작은 시드도 시드다. 세상에 잃어도 되는 돈은 없다. 그런 점에서, 채널의 주류 의견과 거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나는 투자 초기에는 적금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 첫째로, 지출을 강제로 제한해서 근로소득을 시드로 만드는 것을 도와 준다.
– 둘째로, 투자 초기에 하기 쉬운 몰빵 투자 후 시드 삭제의 리스크를 헷지해 준다.
– 마지막으로, 만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듦으로써 FOMO를 감내하고 장기 투자자가 될 수 있는 인내심을 길러 준다.
실제로 나 역시 투자 금액 80% 삭제 1회, 30% 삭제 2회 등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걸 구제해 준 게 적금이었다.
또한 운이 개입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운이 좋거나 나쁨에 따라 목표를 달성하는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운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럼 뭘 해야 하느냐? 운이라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투자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여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투자 결과를 놓고서 나의 실력으로 만들어진 부분과 운이 좋았던(혹은 나빴던) 부분을 분리해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운이 좋았던 때에 겸손하고 운이 나빴던 때에 지나치게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어디까지가 실력이고 어디서부터가 운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드가 커질수록 운으로 좌우되는 영역 자체를 줄여 나가야 한다. 즉,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시드가 작을 때는 크게 잃어도 근로소득으로 금방 복구가 가능하다. 내가 80%를 날렸을 때 몇 달 걸렸지만 복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시드가 커지고 나서 크게 잃으면 근로소득으로 복구가 안 되기 시작한다. 1억원이 가까워지면 슬슬 금융소득이 쌓이는 속도가 근로소득을 따라오려는 게 눈에 보인다. 그 시점부터는 버는 것만큼이나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잃으면 금융소득이 쌓이는 속도가 다시 느려진다.
결 론
첫 1억원을 모으는 게 어렵고 중요하다는 이야기 뒤에는 한 가지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1억원을 모으고 나면 그 뒤로는 저절로 굴러간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1억원이 모여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투자해야 하는 것에도 변함이 없다.
그럼 저절로 굴러간다는 게 무슨 말일까. 개인적으로는 1억원을 모으는 n년에 걸쳐 만들어진 투자 근육이 1억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는 말로 느껴진다. 나 역시 무작정 공부하고 투자하면서 머릿속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던 금융 지식들이 정리되고 나만의 투자관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1억원이 모일 때쯤이었다.
1억원은 도전적 집중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목표다. 너무 쉽지도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챈럼들에게 그것이 최종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일차적으로 1억원을 만들면, 그 다음 목표와 대략적인 방향성도 저절로 보일 것이다.